Biyernes, Mayo 22, 2015

[박문성] 1조4천억 ‘쩐의 전쟁’ 속 한국 프리미어리거들의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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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튼 시절 에이스였던 이청용 ⓒ풋볼리즘
한국 프리미어리거들의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박지성, 이영표의 성공 전례가 이어졌고 현재도 기성용이 소속팀은 물론 프리미어리그 전체로 놓고 보더라도 눈에 띄는 뛰어난 활약을 잇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잉글랜드 무대 잔혹사가 계속되고 있다.
위건의 3부 강등이 확정됐다. 지난 주말 경기로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이번 시즌 일정이 한 경기만을 남겨 놓은 가운데 위건은 최하위 3팀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3부로 추락했다. 위건과 함께 밀월, 블랙풀이 3부로 떨어지는 게 확정됐다.
현 에버튼 감독인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이 이끌던 시절 끈질긴 생명력으로 ‘생존왕’이라 불렸던 위건의 급격한 추락이다. 2013년 여름 2부로 추락한지 2시즌만의 3부 강등이다. 2005년 승격 이후 숱한 위기를 넘기며 8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았고 2012-13시즌 FA컵 우승으로 유로파리그까지 출전했던 걸 떠올리면 수직의 낙하다.
마르티네스 감독이 떠난 뒤 오언 코일, 우베 뢰슬러, 말키 맥카이 감독에 이어 올 시즌 막판에는 지난해까지 위건에서 중앙 수비수로 뛴 1982년생의 젊은 감독 게리 콜드웰까지 소방수로 긴급 투입했지만 3부 추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치 못했다. 위건으로선 스완지가 선수에서 막 은퇴한 게리 멍크를 감독직에 앉혀 위기를 극복한 걸 기대했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즌 막판엔 원정 응원단에게 지원금까지 보태주며 최대한 힘을 모아보려 했지만 한 번 기운 흐름은 좀처럼 뒤바뀌지 않았다.
4시즌 연속 한국 선수 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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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의 김보경 ⓒgettyimages/멀티비츠
위건엔 김보경 선수가 뛰고 있다. 위건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급하게 지휘봉을 잡은 맥카이 감독이 올 초 김보경을 위건 선수로 영입했다. 이전 카디프에서의 인연이 끈이 됐다. 카디프와 계약을 정리했던 김보경은 위건으로 건너와 지난 2월7일 위건 데뷔전을 치렀다. 김보경은 이후 17경기 연속 출전하며 반전의 기회를 잡는 듯했다. 최근 14경기 연속 90분 풀타임 출전 등 팀 내 입지는 확고했다. 하지만 위건이 3부로 추락하면서 빛이 바랬다. 물론 김보경과 위건의 계약은 이번 시즌 종료까지의 단기 계약이다. 이번 시즌 후반기 활약을 바탕으로 새로운 모색에 나서야 하는 김보경이다.
김보경의 소속팀 강등으로 잉글랜드 프로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이 4시즌 연속해서 하부리그로 추락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이룬 것만 같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정이 역전된 것이다. 한국 선수 잉글랜드 무대 잔혹사의 시작은 2012년 여름 이청용의 볼튼이었다. 톰 밀러의 말도 되지 않는 거친 태클로 다리 골절상을 입고 오랜 시간 재활을 한 이청용 선수가 시즌 막판 2경기를 교체로 뛴 시즌이다. 볼튼은 이반 클라스니치와 케빈 데이비스 등을 앞세워 이청용, 스튜어트 홀든 등 큰 부상으로 장기 결장한 주축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수비가 특히 무너지면서 2부로 강등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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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들의 잉글랜드 무대 강등 사례
이듬해에는 박지성과 윤석영의 QPR이 강등됐다. 이때는 박지성과 윤석영 모두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시즌이 아니었다. 그 전 시즌 2부에서 1부로 승격해 17위로 간신히 잔류에 성공했던 QPR의 전력은 상대적으로 허약했고 아델 타랍으로 상징되는 팀 조직력은 심각했다.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 내분설까지 일면서 안에서부터 무너졌던 QPR이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이적해 주장 직을 맡았으나 한국까지 날아와 박지성의 이적을 설득했던 마크 휴즈 감독 해임 이후 자리를 잡지 못했으며 시즌 중 이적한 윤석영은 적응 문제 등으로 1경기도 뛰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리곤 지난해 여름 김보경의 카디프 시티의 강등에 이어 이번 또다시 위건까지 4년 연속해서 한국 선수의 소속팀이 잉글랜드 무대에서 강등 당하는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강등 잔혹사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살아남아야겠지만, 윤석영의 QPR도 현재 강등 위기에 놓여 있다. QPR은 프리미어리그 4경기를 남겨 놓은 가운데 승점 27점으로 19위에 위치해 있다.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기 위해서는 17위 이상 순위에 올라야 한다. QPR은 17위 레스터 시티와 승점 4점 차다. 한 경기 차라 잔류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리버풀(원정) 맨시티(원정) 뉴캐슬(홈) 레스터(원정) 등 잔여 일정이 만만치 않다. 특히 38라운드 최종전 레스터 시티전이 양 팀의 운명을 가를 인생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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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들의 잉글랜드 무대 승격 사례
EPL 이번 시즌 영입 자금만 1조 4376억 원
물론 잉글랜드에 진출했던 한국 선수들이 강등이란 고된 행보만을 이은 것은 아니다. 김두현과 김보경, 윤석영은 각각 WBA와 카디프, QPR 소속으로 2부에서 1부로의 승격을 경험했다. 설기현과 이청용은 각각 울버햄튼과 볼튼에서 레딩과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해 챔피언십에서 프리미어리그로 활약 무대를 옮기기도 했다.
강등과 승격의 이유와 원인은 제각각이다. 개인과 팀마다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강등됐다면 개인과 팀 어디서건 문제가 번진 결과다. 하지만 또 분명한 건 점차 격화하고 있는 잉글랜드 무대의 경쟁 구도다. 살아남는 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프리미어리거가 됐다고 해서 한순간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경쟁의 격화다. 그 만큼 많은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프리미어리거가 오늘 2부 리그나 여타의 리그로 밀려 떠나는 건 일상의 다반사가 됐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부 전력의 계속된 가세가 큰 원인이다. 영국을 제외한 여타의 땅에서 많은 재능들이 잉글랜드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선수 개인과 팀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순위와 승강 싸움은 역대 최고 강도다. 빅4라는 말 자체가 이미 화석화된 표현으로 전략한 프리미어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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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전력의 가세가 그 만큼 폭발적이다. 프리미어리그 내 잉글랜드 선수들의 입지는 크게 줄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잉글랜드 선수들의 비중은 30% 안팎이다. 비 잉글랜드 선수들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프리미어리그 선수 등록 규정을 손질해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에게 기회를 확대해주려는 배경이기도 하다. 프리미어리그 내 외국인 선수들의 비중이 확대됐다고 해서 외부 전력들에게 마냥 기회가 확대됐다고 만도 할 수 없다. 그만큼 경쟁이 엄청나게 확대된 프리미어리그다. 여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재능들이 프리미어리그로 모여들면서 EPL의 진입 장벽과 그 안에서 살아남고 올라서는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박지성, 기성용, 손흥민의 돌아가는 길
프리미어리그의 전 세계 재능의 유입 규모는 구체적 수치를 통해 확인 가능한 일이다. 유럽 축구 리그 중 2014-15시즌 여름과 겨울 이적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푼 곳이 프리미어리그다. 프리미어리그는 무려 12억1000만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돈 보따리를 올 시즌 이적 시장에 쏟아 부었다. 한 시즌에만 선수 영입하는 데 쓴 돈이 우리 돈으로 1조 4376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국가 예산 지표에서나 본 듯한 규모다. 프리미어리그 다음으로 많은 돈을 이적 시장에 쏟아 부은 리그는 스페인의 라 리가로 5억4943만 유로를 썼다. 프리미어리그와 라 리가의 차이는 두 배를 넘는다. 프리미어리그가 선수 영입 자금으로 얼마나 큰돈을 쏟아 부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참고로 다음 순위는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 1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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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택한 전설 박지성 ⓒgettyimages/멀티비츠
이적 시장의 확장은 EPL에 진입하려는 선수들에겐 기회의 확대인 동시에 위기의 심화다. 이적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린 만큼 진입의 문도 넓겠지만 그만큼 들어가려는 규모도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다. 진입했다고 해도 뒤이어 계속해서 치고 들어오려는 경쟁자들 때문에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진입의 문이 넓어진 만큼 뒤로 밀려 나가는 퇴로 또한 넓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한 시즌에만 선수 영입하려고 1조 4천억 원 이상을 쏟아 부는 곳에서의 생존 경쟁이란. 프리미어리그에 진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생존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도전자의 위치인 한국 선수들에게 특히 더한 시대의 흐름일 수밖에 없다. 새삼 맨유라는 세계적 클럽에서 7시즌을 활약한 박지성의 존재감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대목인데 가속화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의 이적 시장 확대 흐름을 볼 때 한국 선수들의 생존 싸움은 진입 못지않게 더 힘든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수치로만 보자면, 한 해만 1조 4천억 시장에서의 싸움인 것이다. 때문에 당장 유럽 무대 진출만을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건 점차 더 위험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뿐만이 아니더라도 유럽의 어느 리그를 목표하건 간에 차분히 돌아가는 것도 이젠 분명한 하나의 길이다. 박지성과 기성용이 유럽의 중소리그를 거치거나 손흥민처럼 유럽의 유스 팀을 밟는 것과 같은, 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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