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yernes, Mayo 22, 2015

[서호정의 킥오프] 김진현, “No.1 골키퍼? 난 아직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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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소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진현 (사진=킥오프)
:: J리그 기행 (2) 오사카에서 만난 수호신 김진현김진현은 아시안컵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수호신으로 올라섰다. 브라질월드컵 이후 대표팀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온 기회를 잘 살려낸 김진현은 처음 대표팀에 승선한 지 5년 만에 드디어 주전 골키퍼를 의미하는 등번호 1번을 확실히 부여 받았다. 김진현은 자신의 주 무대인 일본의 오사카에서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지난 4월 29일 나가이 공원 내 긴쵸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레소 오사카(이하 세레소)와 교토 상가의 경기를 관전하는 내내 김진현에 대한 현지 팬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세레소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김진현의 등번호 21번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찾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를 위한 세레소 서포터즈의 응원가는 일반석의 관중들도 쉽게 따라 할 정도였다.
일본으로 넘어와 보낸 7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가 이 팀에서 어떤 신뢰를 쌓아왔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물 설고 낯 설며, 말조차 통하지 않았을 외지에서 프로 선수로 성장했고, 드디어 대표팀의 No.1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김진현의 역사는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많은 것을 이뤄낸 2015년이지만 김진현은 여전히 겸손했다. 오사카 외곽의 인공섬 마이시마에 위치한 세레소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아시안컵 이후 축구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등에 있는 번호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선수고 대표팀 내의 경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라며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온 선수다운 냉정함을 보였다.
인터뷰 후 자신의 차로 시내까지 데려다 준 김진현은 네비게이션의 도움이 없어도 오사카 시내에서 차가 막히지 않는 좁은 길로 수월하게 갈 수 있는, 현지에 완벽하게 적응된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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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은 팀의 2부 리그 강등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잔류했다 (사진=세레소오사카)
김진현은 왜 J2를 떠나지 않았나?아시안컵이 끝난 후 김진현의 진가가 재평가 받으면서 한국에서 나온 가장 많은 이야기는 ‘J2에서 계속 뛸 것인가?’였다. 김진현의 소속팀 세레소는 2014년에 디에고 포를란이라는 세계적인 선수를 영입하고도 J1에서 7승 10무 17패를 기록, 리그 17위로 결국 강등되고 말았다. 이미 J리그 내에서도 최정상급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터였고 국가대표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진현이 세레소를 떠날 것인가에 모두의 관심이 몰렸다. 그러나 김진현은 세레소에 남았고 현재 2부 리그에서 팀의 승격을 위해 분전 중이다. 세레소가 다시 승격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팀이긴 하지만 한국의 팬들은 2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대표팀 주전 골키퍼의 모습에 의문이 큰 듯 하다.
Q. 교토전 무실점 승리를 축하합니다. 올 시즌 처음 무실점으로 승리한 경기라고 들었어요.A.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었죠. 지금 세레소가 J2에서는 가장 공격력이 좋으니까 많은 골을 넣어서 이기긴 해도 실점을 하니까 저는 수비수들은 아쉬움이 컸어요. 1주일 전에 연습을 하면서 수비수들을 모아서 얘기를 했어요. ‘뭐가 부족한지는 우리가 제일 잘 안다. 많은 이야기는 하지 말고 집중력만 갖자. 그것 하나만 생각하자’고. 수비수들이 도와주면 마지막에 막는 건 내가 할 몫이니까 그건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어요. 마침 교토전에서 바랐던 결과가 나와서 기뻤습니다.
Q. 2013년에 4위를 하고 관중수도 계속 늘어나면서 2014년의 세레소는 뭔가 결실을 맺겠다 싶었는데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당황스러운 결과였을텐데요?A. 강등이 결정됐을 때 이게 사실인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가 이게 맞냐는 생각을 했죠. 2013시즌에는 좋은 성적을 거둬 챔피언스리그도 나갔고 어느 때보다 더 기대를 했던 시즌이었어요. 사상 첫 우승도 목표로 했던 시즌에 오히려 강등을 당하니까 너무 충격이었어요. 분명 팀에는 J리그에서도 손 꼽히는 좋은 선수들이 있었고, 이름값 있는 포를란 같은 선수도 왔는데 전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저도 실망감이 컸어요.
Q. 게다가 라이벌인 감바 오사카는 3관왕까지 했으니까 더 박탈감이 컸을 것 같아요.A. 감바가 성과를 내는 걸 지켜 보며 부러워 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우리는 밑에 있는 상황이고, 어떻게든 잔류를 해야 했으니까 위에서 누가 우승하고 몇위를 하고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정말 생존의 시간이었어요. 시즌이 끝나고 보니까 감바의 성과를 알게 됐죠. 오사카 더비는 굉장히 살벌해요. 비겨도 양팀 모두가 욕을 먹는 경기에요. 지면 야유도 엄청나고. 일단 부럽지만 (오)재석이한테는 축하한다고 얘기해줬어요. 재석이에게는 큰 경험이 됐을 거에요.
Q. 세레소는 개인의 능력으로 따지면 J리그에서도 상위권이잖아요. 좋은 외국인 선수, 전현 국가대표, 유스가 배출한 선수들까지. 대체 무엇 때문에 강등이 된 건가요?A. 리더의 부재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유능하지만 아직은 어린 선수들 위주로 모여 있으니까 재능의 한계를 깨지 못한 거죠. 그게 아직까지 한번도 우승을 못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해요. 분명 좋은 팀이고, 개인 능력이 뛰어난데… 가령 3위권에서 경쟁하다가 선두권으로 가려면 한 단계를 넘어서야 올라가는데 거기서 늘 걸려 넘어져요. 감바의 엔도 야스히토 같은 선수가 없어요. 강등권 싸움에서도 끌어주는 힘이 없으니까 자꾸 팀은 침체되죠. 일본은 워낙 개인이 배려하는 나라라서 그런 분함에 대해 서로 말은 안 하지만 각자는 스트레스를 받고.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눌렸어요. 그걸 극복하지 못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Q. 팀 내에서의 연차나 나이, 능력을 보면 김진현 선수 그런 리더 역할을 해줄 수도 있지 않나요?A. 저는 외국인 선수잖아요. 아무리 언어가 되도 외국인으로서의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들의 인생이나 선택, 방식에 대해 뭐라 하는 건 금기에요. 일본은 개인주의가 강하니까 서로를 터치하지 않고 믿고 가는 수 밖에 없고요. 거기에 껴서 뭐라고 하기가 어려워요. 할 순 있겠지만 다른 선수들은 건방지다고 받아들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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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소에서 김진현은 주장인 야마구치 호타루, 세계적 스타인 디에고 포를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중을 지녔다 (사진=킥오프)
Q. 많은 팬들이 궁금해 합니다. 왜 2부 리그로 강등이 됐는데도 남은 거죠?A. 물론 떠날 수도 있어요. 실제로 강등이 되면 떠나는 선수들도 있고요. 저는 제가 그 결과에 납득을 하지 못했고, 지난 시즌의 경기력을 냉정히 평가했을 때 저한테도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작년까지 6년을 함께 했던 팀이니까 애정이나 의리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선수로서 제가 부족했던 것을 채우고, 문제를 해소하고 싶었어요. 2부 리그라는 표면적 문제 때문에 경기력 유지를 우려하시는 분이 많을 텐데 일단 경기 수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1부 리그 이상으로 어려운 곳입니다. 일주일에 두 경기씩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도 더 철저해야 하고요. 포를란이나 카카우 같은 선수도 여기 있기 때문에 경기력 수준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아요. 대신 빨리 승격을 해야겠죠. 세레소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우승 타이틀이 없었어요. J1은 물론이고 J2도요. 팀 역사의 첫 우승 타이틀을 안기고 싶어요. 무엇보다 플레이오프로 가게 되면 굉장히 힘드니까 격전을 치르기보다는 편하게 1위로 올라가는 게 목표에요.
일본에서의 7년, 세레소의 주역이 되기까지김진현은 동국대에 재학 중이던 2008년 말 세레소에 입단했다. 이미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대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학 무대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뽐냈다. K리그의 많은 팀들이 주목했던 선수였기에 그의 J리그 행은 의외였다. 한국처럼 일본 역시 골키퍼 포지션은 자국 선수를 선호한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이나 남미 출신도 아닌 선수가 J리그의 주전 골키퍼로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일본 내에서도 유례 없는 일이었다. 김진현은 단지 운동장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 J리그에 가장 이상적으로 적응한 선수가 됐다.
Q. 해외에서 뛰는 국가대표 골키퍼는 김진현 선수가 처음인데, J리그로 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이유는 없었어요. 사실 K리그 드래프트 참가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어느 팀으로 갈 지 기대도 했고, 내가 프로의 지명을 받을 수는 있을까 하는 압박감에 긴장도 됐던 시기인데 2008년에 학교에서 안 좋은 상황이 있어 대회를 못 나갔어요. 때마침 에이전트가 경기도 못 나가니까 경험 차원에서 J리그 팀 연습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했어요. 훈련도 하고 경기 감각도 쌓으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고, 그 팀이 세레소였어요. 그런데 당시 팀을 맡고 있던 레비 쿨피 감독님이 훈련 자세나 기량을 좋게 봤는지 바로 계약을 하자고 했어요. 일본은 일반적으로 전력강화부장이 선수 영입을 결정해야 하는데 제 경우에는 감독님이 바로 계약하라고 했어요. 지금 돌아 보면 외국인 감독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외국인 선수에 대한 골키퍼 금지 조항은 없지만 암묵적으로 골키퍼를 외국인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한국인 골키퍼는 처음이었을 테니 내부에서는 반발도 있었을 텐데 쿨피 감독님이 확신을 갖고 저를 데려왔어요.
Q. 아무리 가까운 나라지만 일본은 엄연히 외국이더라고요. 많은 부분이 한국과는 다른데 처음엔 어떻게 적응을 해 나갔나요?A. 정말 어려웠어요. 일단 말이 안 통하니까 뭘 할 수가 없었어요. 어디 나가기가 무서웠죠. 처음엔 숙소 생활을 하는데 말이 안 되니까 쉬는 시간에 뭘 하는데 불가능해서 계속 방에만 있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프로 선수가 돼 하고 있었으니까 삶에서의 힘든 부분은 적었지만 언어가 역시 문제더라고요. 소통을 하고 싶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또 운동장에서 더 좋은 걸 보여주려면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데 제가 직접 못하니까 믿음도 확실치 않았을 거고. 그걸 해소하는데 6개월이 걸렸어요. 정말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했거든요. 대화가 가능해지니까 선수들이 벽 없이 대해줬고 그런 문제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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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소의 홈 경기를 가면 김진현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킥오프)
Q. 경기장에서도 그렇고, 클럽하우스에서도 그렇고 세레소의 어떤 선수보다 인기가 많더라고요.A.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하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도 팬들을 위한 얘길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제 마음을 알아주더라고요. 운동장 안에서의 노력도 인정을 받는 것 같아요. 여기 팬들은 클럽하우스와 연습장에도 정말 많이 찾아오거든요. 작년 같은 경우는 가키타니 선수가 인기가 많아서 천명 정도가 왔는데 저 같은 경우 늘 마지막에 훈련을 마치고 늦게 집에 가는 걸 보고 소문이 나서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강등됐는데도 팀에 잔류하니까 팬들이 인정을 해준 거 같아요. 김진현은 그냥 스쳐가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고 정말 이 팀을 좋아하는 선수라는 식으로.
Q. 언젠가는 K리그에서 뛰겠다는 얘기를 전부터 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J리그에서 이뤄놓은 것을 보니 쉽게 포기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A. K리그에 정말 가고는 싶죠. 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꿈의 무대였거든요. K리그를 보고 자랐고, 거기서 뛰는 게 멋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건 변함이 없어요. 어린 시절부터 선수로서 노력을 해서 마지막에 그 무대에 서는 선수는 정말 적거든요. 당장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가고는 싶죠. 그런데 여기서도 해야 할 게 남아 있고, 갑자기 떠나는 건 말도 안 되니까요. J2라는 데 팀이 떨어진 상태에서 제게도 가장 큰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단은 세레소를 1부 리그로 복귀시킨 다음에 생각해 볼 문제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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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은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을 주전 골키퍼로 거듭났지만 정작 자신은 여전히 No.1이 아니라며 자세를 낮춘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이젠 국가대표 No.1? 아직 한참 멀었다아시안컵이 끝나고 지난 3월 열린 A매치 2연전에서 김진현은 등번호 1번을 달았다. 지난해 월드컵 이후 신태용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 때도 김진현의 등번호는 1번이었지만 이번엔 의미가 남달랐다. 아시안컵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제는 김승규, 정성룡 등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있음을 공인 받은 셈이다. 그러나 김진현은 그 번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Q. 아시안컵이 끝나고 다시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등번호 1번을 받았습니다. 감격적이었나요?A. 아니요. 번호는 단지 등에 붙어 있는 스티커라고 생각해요. 물론 축구에서 9번, 10번, 11번 같은 경우 팀의 에이스라고 해도 좋은, 뛰어난 기량의 선수가 받는 거지만 제 경우는 다른 거 같아요. 세레소에서 분명 주전이지만 제가 달고 있는 번호는 21번이거든요. 번호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좋은 것을 보여줘 인정받느냐의 문제 같아요. 실제로 저는 아직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 대한 불만족이기도 하고요. 아직 해야 할 게 더 많고 발전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Q. 겸손함인가요?
A. 아직까지 실감이 안 나요. 솔직히 저보다 승규가 잘하는 거 같아요. 성룡이 형도 저보다 좋은 선수고요. 물론 전 항상 대표팀의 No.1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지금도 여전히 No.1이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No.1은 아닌 거 같아요. 등번호를 그렇게 달고 있어도 정말 내 것인지, 저 자리가 내 자리가 맞냐는 불안감도 있고요.
Q. 아시안컵을 취재하면서 김진현이란 선수는 늘 고민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더 좋은 경기를 위해 고민을 하고, 모험적인 것도 시도하고.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 골키퍼는 수동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하는 포지션인데 왜 늘 고민하고 있나요?A. 처음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 그런 얘길 들었어요. 골키퍼는 모험을 하면 안 된다, 하지 말라고. 맞는 말이죠.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실수를 하게 되면 바로 실점으로 연결되니까. 세레소에서도 그렇지만 늘 해온 게 그런 플레이 스타일이에요. 그걸 바꾸려고 하니까 어려움도 있고 그러다 보니 대표팀에 가면 약간 위축되는 면이 있어요. 머리 속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으니까. 그 찰나의 순간이 판단미스와 실수로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0.1초가 중요한 상황인데, 다른 생각을 하면 늘 실수를 하게 되더라고요.
Q. 실제로 김진현은 좋은 골키퍼지만 가끔 큰 실수를 한다는 게 대표적인 이미지입니다. 최근에도 A매치나 아시안컵에서 위험한 장면들이 나왔었고. A. 저도 그럴 경우 실수가 크다는 걸 아니까 대표팀 엠블럼을 달고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확실하지 않으면 안 해야 한다.’ 실은 지금도 할 지 말지를 많이 고민해요. 좀 더 순간 집중력을 갖고 판단을 잘 하면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대표팀에서는 그런 고민도 자제해야 할 거 같아요. 슈틸리케 감독님도 안전하게 가는 걸 원하니까 한번씩 지적을 해주세요. 김봉수 코치님에게도 팀이 무너질 수 있는 행동이라고 혼도 나고. 그런데 세레소에 오면 그걸 또 기다릴 수 없거든요. 세레소 선수들은 저의 그런 부분을 인식해줘요. ‘라인을 끌어 올리다가 뒷공간이 뚫려도 진현이가 나와서 커버를 해준다’고 믿고 있으니까. 대표팀은 짧은 시간 안에 뭘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 믿음이 아직 부족할 수 밖에 없죠.
Q. 그런데 실수를 하면 너무 쿨하게 인정하고, 뭘 잘못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더라고요. 조용히 넘어가는 게 본인에게 좋을 때도 있는데.A. 실수한거니까 인정해야죠. 이미 벌어진 상황이고, 해선 안 될 실수였다면 인정하는 게 제가 고칠 수 있는 길이라고 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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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서 종종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는 김진현, 그 실수는 더 좋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고민에서 비롯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Q. 아시안컵이 끝나고 3개월이 지났는데 그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A. 도전적으로, 적극적으로 경기를 하다가 실수가 많았는데 그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책임감 부족으로 비쳤나 봐요. 대회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플레이스타일이 정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좀 더 정확한 플레이를, 공 하나까지 신중하게 대해야겠구나 싶었죠.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제겐 가장 크게 다가온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대표팀의 후보 골키퍼일 때는 뛰고 싶다는 간절함이 컸는데 그 다음엔 책임감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걸 극복해야 진정한 주전 골키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김진현은 지난해 축구 선수로서 가장 큰 소원인 월드컵 출전을 눈 앞에서 놓쳤다. 패배감도 있었지만 교훈도 얻었다. 그리고 다음 4년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그는 어느 때보다 좋은 페이스로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하지만 김진현의 눈은 2018년의 러시아로 향하지 않는다.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은 오늘, 지금 당장이다. 당장 오늘부터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원하는 방향대로 미래를 갈 수 있다는 게 2015년 현재 김진현이 담아 준 가장 큰 생각이다.
Q. 아시안컵을 통해 러시아 월드컵으로 가는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A. 아시안컵이 끝나고 월드컵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눈 앞에서 월드컵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봤으니까 알게 된 거 같아요. 경기를 뛰든 못 뛰든 브라질 월드컵에 갈 수도 있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한 건 멀리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꼭 가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마음은 벌써 브라질에 가 있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경기력이 떨어졌고, 집중력도 안 좋아지더라고요. 중요한 경험을 한 거죠. 하나씩 눈 앞에 있는 당장의 훈련과 경기에서 신중하게, 책임감 있게 행동하면 그 자리는 언젠가는 올 거라고 믿어요. 그 믿음을 갖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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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자신은 김승규, 정성룡과 함께 경쟁 중이라고 말하는 김진현 (사진=대한축구협회)
Q. 일본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살아 남았기 때문에 골키퍼로서 유럽으로도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많은데, 유럽 진출 의지도 있나요?A. 물론 도전하고 싶어요. 나이를 고려해 볼 때 축구 인생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을 도전이라는 건 솔직히 올해와 내년 중에 끝내야 할 거 같아요. 그런데 자칫 그런 도전을 택했다가 잘못돼 월드컵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죠. 월드컵에 나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꼭 나가고 싶으니까요. 앞으로도 몇번 더 월드컵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실패하더라고 도전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나이가 됐어요.
Q. 항상 무언가를 더 채우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100점짜리 골키퍼가 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대체 언제 100점이 채워질까요?A. 축구 선수로서, 골키퍼로서 100점이 되려면 월드컵 우승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100점을 위해 도전하고 싶어요. 마지막에 몇 점으로 평가 받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100점을 향해 노력했다는 과정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야 간절함을 놓지 않을 테니까.
Q. 그러면 지금의 김진현은 몇 점입니까? 
A. 저는 제 자신이 한참 아쉬워요. 아시안컵이 끝나고 10점 만점에 2점, 3점짜리 선수라고 얘기했는데 그 생각은 변함 없고요. 선수로서 해야 할 게 너무 많고, 하나씩 다 해보고 싶어요. 자기 만족을 계속 이뤄가는 거죠. 선수로서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에 만족하고 싶어요. 그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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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완벽한 골키퍼가 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김진현 (사진=킥오프)
오사카(일본)=서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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